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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原齋(서원재) 花樹公 諱永烈齋室(화수공휘영렬재실) 전남 잔성군 남면 삼태리 서태마을 안산(2004.12.25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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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 정문 전경 세천비(四公墓表) 휘진관,진우 수진,수중 西原齋記(서원재기) 佛坮山(불대산)이 우뚝솟아 구름위에 비쳤으니 진원고을의 主山(주산)이다. 그의 한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감돌아 靑羊(청양)으로魚登山(어등산)을 이루고 남쪽으로 起伏(기복)하여 鶴頂峰(학정봉)과 騎鞍山(기안산)을 이루었다. 騎鞍山(기안산)밑에 東台(동태),]中台(중태),西台(서태)의 三台里(삼태리)가 있으니 이는 박씨가 대대로 살아온 옛터이다. 그 선대가 일찍이 터를 잡아 貫鄕(관향)을 진원이라 하였고 直提學 葦南先生(직제학 위남선생)後裔(후예)가 이 附近(부근)에 살아 오면서 대대로 명인이 배출 되었다. 西台一派(서태1파)는 儒業(유업)으로서 대를 잇고 효제로 傳承(전승)하며 지금까지 지켜내려왔다. 이 마을 남쪽과 북쪽에 鎭宇(진우)와 永烈(영렬) 그리고 영렬의 아들 守眞 (수진)과 守中(수중)의 묘들이 상하로 繼葬(계장)되어있으나 아직껏 재실이 없어 이를 마련코자 하나 苛法(가법) <개발제한지역>에 묶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吉煥(길환)과玉鉉(옥현)重盛(중성)등이 誠力(성력)을 다하여 當局(당국)을 설득하였으나 건축허가를 얻지 못했는데 妙計(묘계)를 써서 결국 5년간에 걸쳐 기어히 지어내니 四間(4간) 五楹(5영)가운데 대청을 마련하고 동서 兩使(양사)에는 방을 만들었다. 또 정문 3간에 담장까지 쌓으니 빛고운 꿩을 바라본 듯 하고 제비가 잧아와 기뻐할 것 같으니 이에 산이 더욱 곱고 물이 더욱 맑도다. 齋(재)명은 西台(서태)의 西字(서자)와 진원박씨의 原字(원자)를 나에게 기문을 청함에 기술하노니 공의 6대조 진사 天民(천민)과 5대조 號(호) 松隱(송은) 敬人(경인) 외高 曾祖 考(고,증조,고)의 묘가 다 중태와 서태에 嶝(등)하나 사이에 있어 서로 불러도 대답할 수 있는 거리이다. 이미 중태에 추모재가 크나큰 규모로 다 갖추어 졌는데 어찌 또 서원재를 마련했는가? 제사란 지성을 하는일인데 春秋祭(춘추제)에 묘소를 왔다 갔다 하고 風雨時(풍우시)에나 자손들이 많을 때를 대비해서 마련한 것이다. 내가 보건데 다른 성씨는 100리에 재실하나 마련하기도 어려운데 박씨는 위남공을 모신 학림재와 둔재공을 모신 감산재등다 10리내에 있다. 장차 자손들이 재실에모여서 여름 겨울 글을 읽어 男孝女烈(남효여열)하여 先德(선덕)을 닦게되면 후세가 더욱 昌盛(창성)하게 될 것이다. 이날이 오기를 나도 눈을 부벼 기다리며 이로써 기문을 삼는다.
--辛酉(신유)1981년 2월 黃州 邊 時 淵 (황주 변 시 연) 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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