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玉山齋(옥산재) 諱時煥齋室(휘시환재실) 전남 고흥군 도덕면 벽옥지 마을뒤 계보 보기 |
|
玉山齋記(옥산재기) 옥산재는 고흥의 백옥산 밑에 있는데 진원박씨 선산의 제각이다. 박씨선조에 通德郞(통덕랑) 時煥(시환)께서 보성에서 처음 고흥으로 移居(이거)하여 田園(전원)에 樂(락)을 부치고 貯書(저서)해서 자손에게 남기며 이곳에서 세상을 떠난뒤에 幽宅(유댁)으로 삼았다. 지금 8~9世(세)된 자손들이 번창하여 고을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오직 옛 제각이 오래되어 慨嘆(개탄)하던 차에 9세종손 泰三(태삼)이族中(족중)에서 발의하여 힘을모아 이루게 하고 내글을 청하니 그 제각이란 선조를 추모하여 정성을 모은 것이니라 募先(모선)하고 정성을 모으는 도리는 밖에서 구한 것이 아니고 그곳에 따라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옥산이란 간판은 이뜻이니라 請(청)컨데 玉(옥)으로 비유한다면 朱子(주자)님 詩(시)에 「옥을 간직하게되면 산이 빛을 먹음은 듯 하다」고 했다 대개 그 뜻은 군자가 有德(유덕)함이 속에 쌓이면 빛이 저절로 난다는 것이다. 通德公(통덕공)이 隱居(은거)하면서 行義(항의)한 것이 빛을 감추었다가 流澤(유택)이 후손에게 미치어 계속해서 끊이지 않으니 어찌 蘊玉(온옥)한 빛이라고 아니 하겠는가? 記(기)에 이르기를 「효자는 옥을 잡은 것 같다」고 하니 이 말은 君子(군자)가先謨(선모)를 奉承(봉승)함이 寶玉(보옥)을 가진 것 처럼 조심한 것과 같으니라 그 박씨들의 先德(선덕) 추모하여 제각을 더욱 크게마련하니 어찌 執玉(집옥)한 정성이 아니겠느냐? 옛날 朱子(주자)께서 그 아버지 葦齋(위재)를 寂歷山(적역산)에 장사를 지내고 葦齋(위재)의 詩(시)로써 뒤에 기다린 것 같다고 증언 하였는데 이제 공의 幽宅(유댁)을 이 산에 모시고 또 기다리고 있음이 우연이아니다. 후인들이 생각할 때 어찌 이에 있지 않겠느냐? 오직 그 빛이 멀리 비칠 것을 더욱 바라고 其誠實(기성실)함에 힘써 그 이름의아름다움을 더할뿐이다. 그 山勢(산세)가 굽이치고 起伏(기복)이 상승하여 봉우리에 에워 싸인 형태는 兒孫(아손)들이 줄지어 서있는 것 같다고 風水(풍수)들이 말한 바다 이것이 특히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啓後(계후)한 행적에 그러나 족히 공이 紹前(소전)하여 방불하니 후인의 추원한 생각을 도운 것이다. 그 이름에 서로 맞게 서로 돕게되면 이 제각에서 사는자는 당연히 自得(자득)하게 될 것이다. 이공사에 治終(치종) 勞苦(노고)한 자는 후손 洪柱(홍주)와 一柱(일주)이니라.
--1969년 季冬(계동) 花山 權 龍 鉉 (화산 권 용 현) 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