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遠慕齋(원모재) 諱揚之祭閣(휘양지제각)    전북 임실군 관촌면 막동리

遠慕齋記(원모재기)

       曾子(증자)께서 말하기를『치상에 예절을 다하고 死後(사후)에 恭敬(공경)하면백성에게 덕이 歸一(귀일)한다』

    하니 자손으로서조상에게 비록 멀다고 하지만 追慕(추모)의 道理(도리)가  없을 수 없느니라』추모할 도리는 精誠

    (정성)뿐이다. 후손이 비록 많으나 慕誠(모성)하는데 같이 돌아오게 되면 무슨 일인들 못 이루리요 또 慕祖(모조)하는데

    정성을 드리게 되면 敦睦(돈목)할 誼(의)가 스스로 篤實(독실)하게 되느니라. 篤實(독실)해지면 비록 千秋(천추)라도

    하루 같으니 정성의 도리란 생각해 보면 참 重大(중대)한 일이다.

      烏院江(오원강)의 위요 尨山(방산)의 밑이며 玉堤洞  舟項峙 子坐(옥제동주항치 자좌) 언덕은 나의 16세조

     諱 揚之(휘양지)와傍祖八世祖(방조8세조) 學生珍原朴公 諱 致華(학생진원박공 휘치화)의 壇所(단소)인데 지난

    丁卯(정묘) 3월에 設壇(설단)한 것이다.같은 洞巽 坐原(동손좌원)은 곧 나의 八世祖 嘉善大夫 中樞府事公 諱 致漢

    (8세조 가선대부중추부사공 휘치한)께서 장성에서 이곳 遷葬(천장)하여 자손들이 살 게 된 것이다.

       이곳에 우리집안이 살 게 된후로 처음 葬事(장사)한 할아버지다. 그의 追慕(추모)한 뜻을 어찌 조금이라도 게을리

    할 것이냐 그러므로 재실을 짓은지 여려해인 것이다. 春露秋霜(춘로추상)때면 더욱 한스러우니 더 遷延(천연)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辛巳(신사)(1940년)가을에 祖父(조부)님 重文(중문)께서 先倡(선창)하시고  

    四從祖 重珍 重碩 重玉(4종조 중진 중석 중옥)과從祖 重縉重守 再堂叔 大鉉(종조 중진 중수 재당숙 대현)이분들이

    論議(논의)하니 여러분의 뜻이 같이 하였다. 오직 수려하고 깨끗하게 할것이요 화려하고 웅대하게 하지 않기로 했다.

      墓下(묘하)에 터를 다듬고 얼마 안되어 준공하게 되니  총 3간 재실에 雇直舍(고직사)도 3간으로 둘러서 담장을 쌓다.

    이로부터 追遠(추원) 할 정성 부칠 곳을 얻었으니 거의 曾子(증자)의 가르침을 지키게 된 것이다.

    烏江(오강)의 洋洋(양양)함이여 尨山(방산)의 巍巍(외외)<산이높음>함이로다. 후손이 이곳에 오게되면 慕先(모선)할

    뜻이 더욱 우러나게 되면 우리 박씨의 貽模(이모)가 영원토록 이어지리라.

      

    ※이 재실은 위남선생 仲房孫(중방손) 諱 揚之(휘양지)묘소가 失傳(실전)되었는 바

                                                                         이곳에서 秋享(추향)을 모시고 있는 곳이기도하다.

    --서기 1990년 庚午 重陽節旣望(경오 중양절기망) 中樞公 八代孫  泰一   謹識  (중추공 8대손 태일 기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