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의 유래

 

고령(高嶺)박씨 유래

  1. 시조 박언성(고양대군)은 신라(新羅) 경명왕(박혁거세(朴赫居世)의 29세손)의 둘째 아들로서 본관은 고양과 영천 두 지명을 합하여 고령이라고 하게 되었다.
  2. 박성, 박환(朴還), 박연(朴連)을 중시조로 하는 3파가 있으며, 3파 중에서도 박성의 사인공파(舍人公派)와 박환(朴還)의 부창정공파(副倉正公派)에서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3. 대표적 인물
    • 사인공파는 박은(朴誾), 박장원(朴長遠), 박문수(朴文秀), 박상신, 박영원 등이 있고
    • 사문진사공파에서 박의중(宜中), 박거겸(居謙), 박종남(宗男), 박영신(榮臣), 박연(堧), 박열(說)이 있으며,
    • 부창정공파에는 박광순, 박광우, 박우생, 박임종, 박만, 박처륜, 박영준, 박난영(朴蘭英), 박정번 등이 있다.
    • 박정희(朴正熙) - 5 ~ 9대 대통령 지냄
    • 조선 시대에 56명의 문과 급제자, 1명의 상신, 4명의 청백리를 배출하였다.
  4. 항렬표

26세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이(履)

영(永)

빈(彬)

희(熙)

재(在)

용(鏞)

호(浩)

구(九)

병(炳)

하(河)

성(成)

기(起)

경(慶)

신(新)

중(重)

우(羽)

담(覃)

대(大)

인(仁)

환(煥)

배(培)

우(遇)

윤(胤)

남(南)

래(來)

재(載)

홍(弘)

강(康)

재(宰)

병(秉)

규(奎)

현(賢)

영(英)

하(河)

인(仁)

열(烈)

재(在)

흠(欽)








 

고성(固城)박씨 유래

  1. 시조 박빈(朴彬)은 신라 경명왕의 넷째 아들 죽성대군(박언립)의 13대손이며 박서 장군의 손자다. 고려시대에 문하시3중을 지냈다. 고려 때 죽산 박씨 철성 백파의 후손에게 음성(吟聲)과 고성(固城)을 식읍으로 하사함으로써 음성 박씨와 고성 박씨가 철성백파에서 분관한 것이라고 한다.
  2. 대표적 인물
    • 박보로(朴普老) - 박빈의 손자. 고려 우왕 때 수차에 걸쳐 왜구를 격퇴하고 문하평리(門下評理), 서북면도체찰사를 역임하였다.
  3. '85년 현재 4,428명이 있다.
  4. 항렬표

22세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임(林)

상(尙)

기(基)

진(鎭)

수(洙)

상(相)

욱(煜)

규(圭)

석(錫)

홍(洪)

근(根)

병(炳)

무(茂)






환(煥)

재(在)

호(鎬)

해(海)



성(性)












 

광주(廣州)박씨 유래

  1. 시조 박명훈은 고려때에 전서를 역임했고 후손들이 광주에 정착하여 대대로 살았으므로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광주로 하였다.
  2. 1985년 현재 2,219명이 있다.

 

구산(龜山) 박씨 유래

  1. 시조 朴薦(박천)은 고려말에 벼슬이 정승(政丞)에 이르렀으며 공을 세워 구산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後孫)들이 본관을 구산으로 하였다.(아래 내용은 구산군 인터넷 족보의 내용을 발췌한 것임)
    • 密城大君(彦沈)의 15世孫인 龜山君 朴薦(박천)의 후손.
      중시조의 자는 碩輔(석보)로서 벼슬이 고려말에 政丞(정승)에 이르렀으며, 조선 초기에는 大匡輔國崇祿大夫(대광보국숭록대부) 領議政(영의정)으로 功臣(공신)에 錄勳(녹훈)되었다.
      형인 靖國君(정국군) 威(위)와 함께 대마도 大捷(대첩)에 공을 세워 龜山君(구산군)에 봉해지고 義興縣(의흥현 - 지금의 군위군 의흥면)을 중심으로 한 동북 4개 면을 食邑(식읍)으로 하사 받아 다스렸다.
      그후, 龜山君(구산군)을 중시조로, 본관을 龜山(구산)으로 하였다.
    • 龜山朴氏는 조선조에 들어와서 번성하였는데, 朴仁海(2世)는 安東判官(監營,留守營-從五品), 朴原義(3世孫)는 主簿(郎官-從六品), 朴萬龍(4世孫)은 佐郞(六曹-正六品), 朴乾(5世孫)은 判官(監營,留守營-從五品), 兼山齎 朴艮은 工曹參議(六曹-正三品)를 지냈다.
      또한, 朴震은 工曹判書(六曹-正二品)에 올랐으며, 朴惟昌은 郡守(外官職-從四品)를 역임했으며, 朴형은 參議(六曹-正三品)를 지냈다.
      그리고, 朴聖男과 朴義男은 中樞府事에 올랐으며, 선조 때 한성부 判官을 지낸 晦甫 朴景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하여 郭再祐 휘하에서 화왕산성 수비에 공을 세웠다.
    • 集姓村 : 중시조의 묘소는 경북 군위군 의흥면 수북동에 있으며, 그 후손들은 산아래 중시조가 살던 터에 무검단을 모으고 무검재를 세워 매년 음력 시월 초정일에 享祀하고 있는데, 단과 재실의 명칭을 무검이라 하게 된 연유는, 원래 그곳의 지명이 무검동이었으나 중시조가 생전에 검소 절약을 좌우명으로 삼았고, 또 그곳 사람들이 중시조의 위대한 공훈을 기리기 위해 무검의 두 글자를 인용해서 무검동으로 고쳐 불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 1930년 국세조사 자료에 의하면, 龜山 朴씨가 모여살고 있는 곳은 경북 군위군 우보면 미성동, 이화동 및 의흥면 수북동, 연계동으로서, 이곳에는 약 70여호의 龜山 朴씨가 살고 있습니다. 군위군은 면적에 비해 인구가 극히 적은 경북의 소도에 속하므로 경지면적이 좁아 큰 부자는 없지만, 주민들끼리는 투기하거나 괄시함이 없이 사이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현재는 영주-영천 간 철도가 이 지방을 지나고 대구-안동간 국도가 역시 군위를 통과하므로 비교적 교통이 편하며, 토산물로는 왕골 및 꽃도라지가 유명합니다.
    • 後孫 : 龜山 朴氏 朴 鳳翼은 조선조에 中樞府事를 지냈으며, 朴 鳳祥은 僉正, 朴 興孫은 副尉, 朴 好仁은 都總管(五衛都總府)을 역임하다.
      또한, 朴 壽昌은 護軍(五衛-正4品), 朴 大倫과 朴 景章은 判官(監營,留守營-從五品)에 올랐으며, 朴 世傑은 郡守(外官職-從四品)를 역임하면서 선정을 베풀어 널리 이름을 빛냈습니다.
  2. '85년 현재 4,297명이 있다.
  3. 항렬표

17세

18

19

20

21

22

재(在)

조(祖)

태(泰)

식(植)

만(晩)

왕(王)

 

군위(軍威) 박씨 유래

  1. 시조 박헌은 신라 경명왕(박혁거세의 29세손)의 셋째 아들 박언신(朴彦信 - 속함대군)의 15대손으로 조선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한 개국(開國)원종 공신으로서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전서가 되었을 때 본관을 군위로 하였다.
  2. '85년 현재 1,588명이 있다.
  3. 항렬표

19세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하

(夏)

재

(在)

종

(鍾)

영

(泳)

식

(植)

성

(性)

균

(均)

상

(商)

순

(淳)

동

(東)

희

(熙)

철

(喆)

성

(聲)

승

(承)

모

(模)

섭

(燮)



용

(鏞)

원

(源)

근

(根)

사

(思)

길

(吉)

건

(鍵)









 

나주(羅州) 박씨 유래

    1. 시조 박병묵(시호는 충무)은 고려 때에 평장사를 지냈으나 그의 선조에 대하여는 알 수가 없다. 박병묵은 나주에 오래동안 살아온 선비집안이다. 그래서 후손(後孫)들이 본관을 나주로 하였다.
    2. '85년 현재 3,719명이 있다.
    3. 항렬표

15세

16

17

18

경(敬)

순(淳)

근(根)

성(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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