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의 유래
- 시조 박언성(고양대군)은 신라(新羅) 경명왕(박혁거세(朴赫居世)의 29세손)의 둘째 아들로서 본관은 고양과 영천 두 지명을 합하여 고령이라고 하게 되었다.
- 박성, 박환(朴還), 박연(朴連)을 중시조로 하는 3파가 있으며, 3파 중에서도 박성의 사인공파(舍人公派)와 박환(朴還)의 부창정공파(副倉正公派)에서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 대표적 인물
- 사인공파는 박은(朴誾), 박장원(朴長遠), 박문수(朴文秀), 박상신, 박영원 등이 있고
- 사문진사공파에서 박의중(宜中), 박거겸(居謙), 박종남(宗男), 박영신(榮臣), 박연(堧), 박열(說)이 있으며,
- 부창정공파에는 박광순, 박광우, 박우생, 박임종, 박만, 박처륜, 박영준, 박난영(朴蘭英), 박정번 등이 있다.
- 박정희(朴正熙) - 5 ~ 9대 대통령 지냄
- 조선 시대에 56명의 문과 급제자, 1명의 상신, 4명의 청백리를 배출하였다.
- 항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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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履) |
영(永) |
빈(彬) |
희(熙) |
재(在) |
용(鏞) |
호(浩) |
구(九) |
병(炳) |
하(河) |
성(成) |
기(起) |
경(慶) |
신(新) |
중(重) |
우(羽) |
담(覃) |
대(大) |
인(仁) |
환(煥) |
배(培) |
우(遇) |
윤(胤) |
남(南) |
래(來) |
재(載) |
홍(弘) |
강(康) |
재(宰) |
병(秉) |
규(奎) |
현(賢) |
영(英) |
하(河) |
인(仁) |
열(烈) |
재(在) |
흠(欽) |
- 시조 박빈(朴彬)은 신라 경명왕의 넷째 아들 죽성대군(박언립)의 13대손이며 박서 장군의 손자다. 고려시대에 문하시3중을 지냈다. 고려 때 죽산 박씨 철성 백파의 후손에게 음성(吟聲)과 고성(固城)을 식읍으로 하사함으로써 음성 박씨와 고성 박씨가 철성백파에서 분관한 것이라고 한다.
- 대표적 인물
- 박보로(朴普老) - 박빈의 손자. 고려 우왕 때 수차에 걸쳐 왜구를 격퇴하고 문하평리(門下評理), 서북면도체찰사를 역임하였다.
- '85년 현재 4,428명이 있다.
- 항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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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林) |
상(尙) |
기(基) |
진(鎭) |
수(洙) |
상(相) |
욱(煜) |
규(圭) |
석(錫) |
홍(洪) |
근(根) |
병(炳) |
무(茂) |
환(煥) |
재(在) |
호(鎬) |
해(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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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 |
- 시조 박명훈은 고려때에 전서를 역임했고 후손들이 광주에 정착하여 대대로 살았으므로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광주로 하였다.
- 1985년 현재 2,219명이 있다.
- 시조 朴薦(박천)은 고려말에 벼슬이 정승(政丞)에 이르렀으며 공을 세워 구산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後孫)들이 본관을 구산으로 하였다.(아래 내용은 구산군 인터넷 족보의 내용을 발췌한 것임)
- 密城大君(彦沈)의 15世孫인 龜山君 朴薦(박천)의 후손.
중시조의 자는 碩輔(석보)로서 벼슬이 고려말에 政丞(정승)에 이르렀으며, 조선 초기에는 大匡輔國崇祿大夫(대광보국숭록대부) 領議政(영의정)으로 功臣(공신)에 錄勳(녹훈)되었다.
형인 靖國君(정국군) 威(위)와 함께 대마도 大捷(대첩)에 공을 세워 龜山君(구산군)에 봉해지고 義興縣(의흥현 - 지금의 군위군 의흥면)을 중심으로 한 동북 4개 면을 食邑(식읍)으로 하사 받아 다스렸다.
그후, 龜山君(구산군)을 중시조로, 본관을 龜山(구산)으로 하였다.- 龜山朴氏는 조선조에 들어와서 번성하였는데, 朴仁海(2世)는 安東判官(監營,留守營-從五品), 朴原義(3世孫)는 主簿(郎官-從六品), 朴萬龍(4世孫)은 佐郞(六曹-正六品), 朴乾(5世孫)은 判官(監營,留守營-從五品), 兼山齎 朴艮은 工曹參議(六曹-正三品)를 지냈다.
또한, 朴震은 工曹判書(六曹-正二品)에 올랐으며, 朴惟昌은 郡守(外官職-從四品)를 역임했으며, 朴형은 參議(六曹-正三品)를 지냈다.
그리고, 朴聖男과 朴義男은 中樞府事에 올랐으며, 선조 때 한성부 判官을 지낸 晦甫 朴景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하여 郭再祐 휘하에서 화왕산성 수비에 공을 세웠다.
- 集姓村 : 중시조의 묘소는 경북 군위군 의흥면 수북동에 있으며, 그 후손들은 산아래 중시조가 살던 터에 무검단을 모으고 무검재를 세워 매년 음력 시월 초정일에 享祀하고 있는데, 단과 재실의 명칭을 무검이라 하게 된 연유는, 원래 그곳의 지명이 무검동이었으나 중시조가 생전에 검소 절약을 좌우명으로 삼았고, 또 그곳 사람들이 중시조의 위대한 공훈을 기리기 위해 무검의 두 글자를 인용해서 무검동으로 고쳐 불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 1930년 국세조사 자료에 의하면, 龜山 朴씨가 모여살고 있는 곳은 경북 군위군 우보면 미성동, 이화동 및 의흥면 수북동, 연계동으로서, 이곳에는 약 70여호의 龜山 朴씨가 살고 있습니다. 군위군은 면적에 비해 인구가 극히 적은 경북의 소도에 속하므로 경지면적이 좁아 큰 부자는 없지만, 주민들끼리는 투기하거나 괄시함이 없이 사이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현재는 영주-영천 간 철도가 이 지방을 지나고 대구-안동간 국도가 역시 군위를 통과하므로 비교적 교통이 편하며, 토산물로는 왕골 및 꽃도라지가 유명합니다.
- 後孫 : 龜山 朴氏 朴 鳳翼은 조선조에 中樞府事를 지냈으며, 朴 鳳祥은 僉正, 朴 興孫은 副尉, 朴 好仁은 都總管(五衛都總府)을 역임하다.
또한, 朴 壽昌은 護軍(五衛-正4品), 朴 大倫과 朴 景章은 判官(監營,留守營-從五品)에 올랐으며, 朴 世傑은 郡守(外官職-從四品)를 역임하면서 선정을 베풀어 널리 이름을 빛냈습니다.- '85년 현재 4,297명이 있다.
- 항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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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在) |
조(祖) |
태(泰) |
식(植) |
만(晩) |
왕(王) |
- 시조 박헌은 신라 경명왕(박혁거세의 29세손)의 셋째 아들 박언신(朴彦信 - 속함대군)의 15대손으로 조선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한 개국(開國)원종 공신으로서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전서가 되었을 때 본관을 군위로 하였다.
- '85년 현재 1,588명이 있다.
- 항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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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夏) |
재 (在) |
종 (鍾) |
영 (泳) |
식 (植) |
성 (性) |
균 (均) |
상 (商) |
순 (淳) |
동 (東) |
희 (熙) |
철 (喆) |
성 (聲) |
승 (承) |
모 (模) |
섭 (燮) |
용 (鏞) |
원 (源) |
근 (根) |
사 (思) |
길 (吉) |
건 (鍵) |
- 시조 박병묵(시호는 충무)은 고려 때에 평장사를 지냈으나 그의 선조에 대하여는 알 수가 없다. 박병묵은 나주에 오래동안 살아온 선비집안이다. 그래서 후손(後孫)들이 본관을 나주로 하였다.
- '85년 현재 3,719명이 있다.
- 항렬표
15세 |
16 |
17 |
18 |
경(敬) |
순(淳) |
근(根) |
성(成) |